하얀 모래 끝에는 파란 네가 기다린다.
소리 없는 발걸음에 맞춰 하늘하늘 손짓한다.
다가가 뻗은 손에 젖은 네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감기어도
가만히 누운 너는 말이 없어 나는 네 머리를 쓰다듬는다.
뜨거운 날 손 안 가득 흐르던 네 고운 머릿결을,
나를 두근대게 하던 네가 차가워 너를 뿌리치면
말없이 너는 나를 떠나 흐린 구름 너머로 사라진다.
너와 내가 함께 하던 한 뼘 붉은 땅에 남는 것은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닌 하늘에서 떨어진 서늘한 눈물.
천천히 비벼 쥔 손 끝에 스며드는 이슬이 서러운 나는
조심스레 손 안 가득 마른 너를 담아 나를 부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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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찍한 방. 서가(書架)에는 책이 속속들이 꽂혀있고 책상 위 벼루와 붓에는 아직 먹도 마르지 않았다. 이런 방을 아마 집무실(執務室)이라 부르리라. 하지만 그런 고즈넉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방 안에는 한명의 노인과 한명의 청년의 남성이 자리를 메운다. 노인은 뒤돌아 뒷짐을 진 채로 남자를 바라보려 하지 않고, 남자는 그런 노인을 바라보며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떠나겠습니다.”
돌아선 노인의 눈매가 꿈틀거린다. 평소에는 인자했을만한 눈매도 오늘만큼은 치켜 올려져 사나운 심기를 대변한다.
“떠난다? 어디로 말이냐?”
“하늘 아래 제 한 몸 건사할 곳이 없겠습니까.”
태평한 장년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노인은 그제야 몸을 돌리고 그를 바라본다. 눈가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여간 노한 것이 아닌 듯하다.
“고얀 놈! 고작 그 정도의 일로 가문을 떠나니 마니 한단 말이냐!”
“도대체 무인(武人)에게 주화입마(走火入魔)가 언제부터 그 정도의 일이였습니까?”
“주화입마 따위! 내가 그 정도의 일도 해결하지 못할 것처럼 보였더냐! 너는 본가의 소가주(小家主)라는 자리가 그리도 하찮아 보이더냐!”
한 마디 한 마디 내뱉는 노인의 음성에는 노기가 충전(充電)하여 당장에라도 손을 쓸 법한 분위기가 흐른다. 하지만 청년은 여의치 않는 듯 얼굴은 그저 평탄(平坦)할 뿐이다.
“이미 늦은 일입니다. 이제서 되돌릴 방법 따위는 없겠지요.”
“그럼 예향이는… 그리고 아직 두 살밖에 안된 수연이는 어찌할 것이냐?”
노인의 음성이 한결 누그러진다. 당연한 일이다. 그 혼자 떠나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남겨진 사람은 어찌할 것인가?
두 이름을 들은 남자의 얼굴에도 처음으로 표정이 생겨난다. 슬픔, 그리고 미안함.
“예향은… 좋은 여자입니다. 수연이를 잘 다독여 주겠지요.”
“이놈! 네 정녕!”
“이미 결심한 일입니다. 아내와도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이….”
붉어진 얼굴로 뭐라 으름장을 놓으려던 노인은, 갑자기 한숨을 푹- 하고 쉬더니 이내 체념한 표정이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잘 안다. 한 번의 결정을 위해 여러 날을 심사숙고하고, 한 번 결정된 일은 부러질지언정 굽히지는 않는다. 아마 가문에서는 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발견했으리라. 그러니 저리 떠난다는 말이 쉽게 나오는 것이리라.
“… 돌아는 올 것이냐.”
“제가 이전처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때, 그때 돌아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부인과 딸을 잘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뭐니 뭐니 해도 그 둘은 세가의 맏며느리와 아버지의 사랑스러운 손녀니까요.”
“둘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썩 꺼져라 이놈! 더는 보기 싫다!”
노인이 호통을 쳐 보지만 방금 같은 힘은 없다. 남자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그도 안다.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허황되고 언제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것인지는. 하지만, 하지만 방법이 없다. 세가의 소가주로서 무공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스스로 물러나지 않아도 장로들이나 수뇌부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무공조차 없는 자를 자신들 위에 세울 수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후광으로 얼마간을 버틸 수 있다지만, 아마 스스로가 괴로울 것이다. 자신이 이럴 진데 아내와 딸은 어떻겠는가. 모두를 위해서 잘한 선택이다. 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밖으로 나와서 남자는 뒤로 돌아섰다. 방 안에는 아직 아버지의 기운이 느껴진다. 하늘을 닮고, 검을 닮은 그 기운을. 그는 말없이 방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결연한 표정으로 길을 나섰다. 이제는 스스로 해야 할 차례다.
***
“꼬마야 너 이름이 뭐냐?”
“…….”
“녀석, 어른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양.”
“응?”
“소양, 진소양(陣笑良).”
“소양(笑良)이라. 좋은 이름이구나. 난 나… 아니, 마청오(麻靑烏)라고 하는 사람인데. 어때, 나를 따라와 보지 않을래?”
“아저씨를 따라가면 뭘 하는데요?”
“아마, 무공(武功)을 배우게 되겠지.”
“아저씨를 따라가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요?”
“굶지는 않게 해줄 수 있지.”
“그럼 왜 하필 저를 따라다닌 거죠?”
“너는 나를 닮았어. 나도 어릴 때는 너처럼 똘망똘망하고 잘 생겼었거든.”
아이의 눈이 ‘꿈틀’한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표정이다.
“…뭐, 좋아요. 아저씨가 밥만 먹여준다면.”
“서른도 안 된 사람한테 꼬박꼬박 아저씨라니, 일단 자리를 좀 옮기도록 하자. 그리고 나는 너에게 배사지례(拜師之禮)를 받을 거다. 내가 너의 사부(師傅)가 되는 거지.”
사부, 그리고 제자. 그 첫 만남 이였다.
***
내 이름은 진소양 이다. 웃음(笑)을 나누어 준다(良)고 해서 소양이다. 이름은 할아버지께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지어 주셨다고 했다. 어머니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전쟁에서 전사(戰死)했다고 하고, 어머니는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것 외에 할아버지는 자신과 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이야기 해 주진 않았다.
할아버지는 나무로 된 그릇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유지했고 우린 언제나 쫓겨 다니듯이 산과 마을을 넘나들며 살았다. 이 산에서 그릇을 만들어 저 마을에서 팔고, 다시 저 산에 올라가 그릇을 만들고. 전 중원을 누비며 언제나 떠돌이 신세 그 이상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던 와중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내가 다섯 살 때의 일이다. 마을에서 그릇을 팔던 도중 무림인(武林人)의 시비에 휘말렸다고 한다. 그때 나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당과에 눈이 팔려 돌아가시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이 혀를 차고 지나가며 덮어준 거적 데기에 쌓인 모습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이였다. 나에게 남은 것은 옥으로 된 비녀 하나와 검은 쇠로 만들어진 목걸이 하나, 그리고 동전 몇 푼이 전부였다.
그렇게 혼자가 된 나는 이년 정도를 떠돌았다. 할아버지에게 억지로 배운 그릇 만드는 기술은 아직 어린 내가 하기에는 힘들었고, 다른 고아들처럼 구걸을 해도 동네 거지에게 얻어맞고 동냥한 음식을 빼앗기기 일쑤였다.
사부를 만난 건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굶주림을 참지 못해 조악하게 만든 목기(木器)를 길바닥에 늘어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허름하게 생긴 남자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남색(男色)을 한다는 변태들의 이야기도 종종 들어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냅다 줄행랑을 쳤었다. 그런데 마을을 하나 지나고, 두 개를 지나고, 세 개를 지나도 떨어질 생각을 하질 않는 게 아닌가.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아마 지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굶주림과 외로움, 그리고 돌아봐 주지 않는 처지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제자가 되었다. 그렇게 오년 정도가 흘렀다.
처음 이년 정도는 먼저 글을 배웠다. 읽지 못하는 자는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자는 깨닫지 못한다나 뭐라나. 천자문(千字文)부터 시작해서 소학(小學), 대학(大學), 명심보감(明心寶鑑)등 하루의 반을 글공부에 쏟아 붓고 남는 시간에는 시(詩),서(書),화(畵) 거기에 음(音)을 배웠다. 그리고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육도(六韜)와 삼략(三略) 등등… 혹시 사부는 나를 문인(文人)으로 키우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사람다워 지는 법, 세상을 사는 법, 남과 어울리는 법,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그곳에 있다고 했다.
그런 다음 배운 것은 적류공(赤流功)이라는 숨 쉬는 방법이다. 일만공(一萬功)이라는 몸 쓰는 방법도 있다는데 그건 아직 이르다며 가르쳐 주지 않았다. 사부가 알려준 건데 나는 흔히 말하는 단전(丹田)이라는 게 없다고 한다. 아니, 없다기 보다는 작아서 쓸 수가 없다고 한다. 단전에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기운이 들어있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그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있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아마 나는 태어났을 때 죽었어야 하는 운명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부모님이든 할아버지든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도움으로 좋은 영약을 먹고 몸의 기운이 균형을 잡게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대신에 내공(內空)을 쌓지는 못한다고. 사부도 무언가의 사고로 단전이 망가졌다고 했다. 그렇기에 단전에 기운이 없는 나를 알아볼 수 있었다고 했다.
단전에 기를 쌓지 못한다. 그래서 만든 것이 적류공. 적류공은 무림에 존재하는 다른 심법과는 궤를 달리 한다고 한다. 굳이 공통점이 있는 것을 찾자면 저 멀리 서장(西藏)의 승려들이 쓴다는 혈염마공(血炎魔空)쯤 된다나. 나도 알 정도로 유명한 무당파(武當派)나 소림사(少林寺)의 심공은 경락(經絡)으로 기를 순환시켜 내공을 얻는다고 한다. 하지만 적류공은 온몸에 흐르는 피에 기운을 불어넣는다. 그렇게 피를 타고 흐르는 내공은 혈관을 따라 몸 구석구석 머리부터 발끝까지 휘돈다. 머리카락까지 기운이 흐르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는 연한 적색을 띄고 호흡을 일으키면 온몸에 붉은 기운이 서린다. 이것은 기운이 피와 동화되어 같은 색깔을 띠게 되는 것이란다. 그래서 적류(赤流)다.
적류공은 피를 돌린다. 사람은 피가 빠르게 돌게 되면 반사 신경이나 힘 같은 게 더 강해진다고 한다. 수미개자(須彌介子)라는 말이 있듯이 겨자씨만한 작은 힘으로도 수미산 마냥 커다란 힘을 낼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남들이 일 년 동안 내공을 쌓아야 낼 수 있는 힘을 적류공은 한 달이면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상처에 대해서 회복이 빠르다. 실제로 소양도 신법을 수련하면서 나뭇가지에 긁히거나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놀랍다 못해 기괴(奇怪)하기까지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사부가 만들고 아직 완성된 심공이 아니라 몇 군데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 피를 너무 빠르게 돌리면 혈관에 무리가 와서 크게 다칠 수도 있다. 사부도 시험 삼아 한계까지 피를 돌리다가 혈관이 터져서 의방(醫房)신세를 졌다고 한다. 그리고 기의 양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큰 힘을 낼 수 있는 건 맞지만, 사람 몸에 흐르는 피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 기운을 실어 보내니 결국 과도한 기운을 품게 되면 피가 날뛰게 된다고 한다. 게다가 심장에 기운을 모으고 뽑아내기 때문에 무리하면 좋지 않다고 했다.
오늘은 사부가 일만공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그전에 먼저 배운 건 발을 움직이는 천풍신법(天風身法)이다. 본래는 사부 가문의 비전이라고 하지만 뭐, 내가 다른 사람을 가르쳐줄 일도 없으니 그냥 배우라고 했다. 일단 발을 움직일 줄 알아야 몸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하면서. 신법을 수련하면서도 일만공이 기대가 되는걸 보니, 나에게도 무인의 피가 흐르고 있긴 하는 것 같다.
***
섬서에서 유명한 곳을 뽑으라면 화산(華山)이 있다. 황하(黃河)와 위하(渭河)가 만나는 곳에 웅장하게 솟은 중원 오악(五岳)의 하나. 도가의 명소이자 중원 검파(劍派)의 성지.
하지만 섬서에는 화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종남산(終南山)도 있다. 종남산도 예로부터 도인(道人)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하고 화산과 함께 오대 검종(劍種)으로 불리는 종남파가 있는 곳이다. 워낙 명산으로 이름이 높은 터라 고적과 명승을 탐방하는 사람이 북적거리지만 종남산 안쪽의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산세가 높고 험해 일반인이 찾아들기에는 힘든 까닭이다. 종남산에 터를 잡은 종남파의 경우에도 자칫 길을 잃기 쉬워 제자들의 출입을 통제할 정도니 종남의 깊은 산속에는 신비한 것이 있다(終南之處)라는 말이 그냥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사람의 발길도 닿지 않고 동물조차 함부로 뛰어 다니지 못하는 깊은 곳. 헌데 그곳에는 나무를 자르고 땅을 펴서 만든 터에 조악하게 지어진 집이 한 채 있고 그곳에는 사람이 산다. 바로 마청오와 이제 열두 살이 된 진소양이다. 한창 마청오가 진소양을 상대로 무공 교습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제는 작게만 볼 수 없는 소양이 발을 놀리며 초목 주위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면 청오는 한창 신법 삼매경(三昧境)에 빠져있던 소양을 소리쳐 불러 세웠다.
“어이 제자. 신법은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 이리 와봐.”
그의 말을 들은 소양이 그의 근처로 다가오더니 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소양이 자리를 잡자 마청오는 옅게 기운을 일으키고는 말했다.
“오늘은 전부터 얘기한대로 일만공을 가르쳐 줄 꺼야. 일단 지금은 그냥 보기만 해둬. 이게 일만공 중에서도 일권공(一拳空)의 초식이야.”
‘핫’ 하는 기합과 함께 진각을 힘차게 밟는다. 그러고는 허공에 손을 한번 지른다. 그걸로 끝이다. 놓칠세라 그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지켜보던 진소양이 고개가 갸웃해질 정도다.
“사부, 그게 무슨 무공이야. 그냥 주먹질이지.”
확실히 마청오가 자신 있게 선보인 것은 무공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제자가 사부에게 하는 말 치고는 싸가지가 없다. 하긴 오년이 지나도 그대로인 진소양의 말버릇과 퉁명스러운 성격은 그도 두 손 두 발 다 들게 할 정도니 이제 와서 고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소양을 아이답게 만들어 보겠다고 팔 걷고 나선 그가 정신연령이 어려질 판이다.
“주먹을 지르면 일권공, 손가락으로 찌르면 일지공, 손바닥은 일장공. 이렇게 일만 개가 되면 그게 일만공의 연공(年功)이라는 말씀이지.”
“에게. 고작 그런 걸 가지고 나한테 고금제일(古今第一)의 무공이라고 허풍을 쳤던 거야?”
다분히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소양은 무공은 하늘을 날고 산을 가르는 개세(蓋世)적인 위력은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뭔가 좀 화려하고, 보는 사람이 멋있어 보이는 그런 것을 기대했는데 허공에 주먹질이라니 이 무슨 추태란 말인가.
“쯧쯧, 한심한 제자야. 눈에 보이는 화려함 따위는 다 쓸데가 없어. 지네들 약한 걸 숨기려고 괜히 겉멋 들어 보이는 척 할 뿐이라니까. 중요한건 위력이지 위력.”
“그럼 그 위력을 한번 보여 줘 봐. 그럼 믿을게.”
“후후. 보고 놀라서 이 사부를 너무 존경하지만 마라.”
산을 억지로 깎아서 만든 곳이라 둘이 기거하는 집 주위에는 땅을 고를 때 뽑아놓은 바위가 많다. 두리번거리던 청오는 그중 사람 키만 한 바위로 가더니 자세도 잡지 않고 주먹을 휙 하고 내지르는데, 아까완 다르게 그 속도가 가히 섬전(閃電)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의 일격(一擊)을 맞은 바위는 두부마냥 주먹이 쑥 들어가는 게 아닌가. 하지만 주먹이 들어갔다 나온 자리 근처에는 실금조차 없이 아주 매끈한 표면 그대로였다.
“흐흐, 어때? 멋지지?”
스스로가 대견한지 철없는 사부가 철안든 제자에게 웃음을 짓는다. 대체 누가 그를 보고 이립이 지났다는 것을 믿겠는가.
“뭐야, 난 또 바위를 박살이라도 내는 줄 알았는데.”
“모르는 소리. 이 사부가 누누이 말했잖아. 진정한 파괴는 부수는 게 아니라 꿰뚫는 거라니까.”
“알았어. 뭐 신기하니까 됐어. 사부,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대꾸는 귀엽지 못하지만 눈은 호기심에 반짝거린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또래의 아이들과 같다. 마청오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음… 몸 쓰기 전에 먼저. 소양아, 힘이라는 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근육 아냐? 전에 유 아저씨 왔을 때 ‘남자는 힘’ 이라면서 바위 다 부시고 다녔잖아.”
“그럼 네가 보기에는 내가 그놈처럼 우락부락해 보이든?”
“그건 아니지. 사부는 내가 보기에도 약해 보이는 걸.”
사실 조금 왜소할 뿐이지 약해 보이지는 않는다. 단전이 없으면 몸에 흐르는 기운이 약해지고 기력이 떨어지면 힘이 약해진다. 결국 근육은 힘을 잃고, 뼈는 쉽게 부서진다. 하지만 마청오는 건강하다 못해 온몸에 활력이 넘친다. 하지만 일격에 바위에 구멍을 뚫을 정도는 아니다.
진소양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사부는 왜 저렇게 강할까. 사부가 가지고 있는 게 뭘까. 무언가가 생각난 소양은 넌지시 던져본다.
“혹시… 내공?”
“반은 맞췄어. 내공을 운용하면 어떻게 되지?”
소양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내공을 쓰면 그냥 보통보다 강해졌다고 생각할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적류공을 운기하면서 자신이 내공을 운용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나열하기 시작했다.
“눈이 잘 보이고, 힘이 세지고, 음… 모르겠어.”
“정답은 빨라진다는 거야. 요컨대 속도란 말이지. 이런 구멍을 뚫으려면 느리고 강하게 쳐야할까? 아니면 빠르고 가볍게 쳐야할까?”
“당연히 빠르고 가볍게 해야지. 내가 그것도 모를까봐?”
강하고 느리게, 중(重)이다. 중의 요결로서 바위를 내려치면 구멍이 뚫리기 보다는 박살이 날 것이다. 소양은 사부의 친구인 유씨가 바위를 부수는 것을 자주 목격했었다. 그 결과물이 지금도 집 주위에 널브러져 있지 않은가.
“그래, 빨라야 힘이 생겨, 속도가 곧 힘이 되는 거야. 특히 적류공은 빠름에 있어서는 중원의 여타 다른 내공심법과는 차원이 다르지. 일만공에 초식이 없는 이유? 그것도 간단해. 눈으로 쫒을 수 없는 빠름에는 이격(二擊)이 필요 없는 법이지. 초식은 상대방이 방어할 때를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에 있는 거지. 한번이 안 되면 두 번, 두 번이 안 되면 세 번… 허초 조차 허용하지 않는, 빛마저 뛰어넘는 빠름(快)! 캬- 멋지지 않냐?”
청오가 스스로 말을 하면서 도취되어 버리니 소양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해도 멋진 것 같기는 하다. 두 번이 필요 없는 빠름.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속도.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적(無敵)이 아닐까?
“그럼 나도 천하제일(天下第一)이 될 수 있을까?”
“아직은 아냐. 강호에는 날고 긴다 하는 고수가 많은데 그놈들은 일단 눈이 다 좋거든. 손에 꼽힐만한 고수들은 적류공의 움직임도 읽을 수 있을 거야. 거기에 외공(外空)을 극성으로 익힌 사람이라면 일만공의 타격쯤은 비웃어 넘길걸?”
“아직 이라면 나중에는 가능하다는 거야?”
“그건 때가 되면 다 알 수 있을 거야.”
청오는 생각했다. ‘그’라면 이 아이를 완벽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나중의 일이다. 지금은 아래서부터 쌓아 올라가야 할 차례다. 소양은 보면 볼수록 놀라운 무골(武骨)이었다. 처음 아이를 봤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가. 전설의 천무지체(天武之體)까지는 아니지만 그 천부적인 골격과 배운 것을 몸으로 풀어내는 탁월한 이해력까지! 그는 정말 하늘이 자신을 위해 내려준 것으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 아이가 장성하면 본가로 금의환향(錦衣還鄕) 하리라. 보라고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이렇게 다시 돌아왔지 않느냐고. 그렇게 그는 마음속으로 수백 번 다짐했다.
***
“합! 합!”
눈 쌓인 종남산 기슭. 그곳에 자리한 오두막 앞에서 웃통을 벗은 한 소년이 힘차게 기합을 지르며 주먹을 뻗는다. 키는 사척 반 정도 될까, 선이 가늘고 호리호리한 체형이지만 군살하나 없이 탄력 있는 근육이 온몸을 채웠다. 오똑한 코에 입술은 고집스럽게 다물려 있고, 초롱초롱하지만 선량하게 생긴 눈을 가졌는데 절세적인 미남까지는 아니지만 길을 지나가다 한번쯤 돌아볼 만한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는 바로 진소양이다.
이제 열다섯이 된 소양은 매일 묘시에 일어나 적류공을 수련한 뒤 기초적인 운동으로 몸을 풀고, 낮에는 일만공과 천풍신법을 수련한다. 그리고 저녁에는 사부와 함께 서책을 배우니 하루가 지나갈수록 괄목상대(刮目相對)하는 그의 모습이 마청오를 미소 짓게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 연공에 들어가 땀을 흘리고 있는 도중, 저 아래서부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한 남자가 나타난다.
“여- 소양아. 오늘도 아침부터 열심히구나!”
“어? 유 아저씨! 왠일로 아침에 보네?”
나타난 남자는 사부 마청오의 하나밖에 없는 친구라 할 수 있는 유씨였다. 본명은 유강패(劉强覇)로 종남산 밑의 상청(上靑)마을에서 대장간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부리부리한 눈매에 코는 태산처럼 우뚝 솟았고, 굳게 닫힌 입술과 강철 같은 수염은 삼국시대의 장비를 연상케 한다. 칠척장신의 키에 기골 또한 장대해서, 겉으로 드러난 팔뚝에는 근육이 꿈틀거리고 칼로 그어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을 정도로 탄탄해 보인다.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왼쪽 이마부터 턱까지 내려오는 커다란 자상(刺傷)인데, 이것이 남자다워 보이는 그의 얼굴을 한결 험악하게 보이게 한다. 호탕한 목소리에 성격도 대범하고 털털하기 때문에 실로 호한(好漢)이 아닐 수 없었다. 그와 청오를 데려다 놓고 보면 공통점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을 정도니 서로의 친분이 두터운 까닭이 궁금할 따름이다.
청오가 바깥나들이를 하지 않는 탓에 그는 자주는 아니지만 달에 한번은 오두막까지 올라와 청오와 대작(對酌)을 하고는 했고, 자기가 만든 단검이나 식칼 따위를 주기도 했다. 그가 만든 물건은 겉보기엔 투박해 보이지만 매우 단단하여 어지간해서는 잘 부러지지 않았고, 날만 잘 살려주면 두고두고 사용할 수 있었다. 본인은 별것 아니라고 했지만 이런 칼을 만들려면 비전(祕傳)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정도는 소양도 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과거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별로 말해주고 싶은 눈치가 아니기에 깊이 묻지는 않았었다.
항상 강패가 찾아올 때면 오후 늦게 이거나 저녁쯤 이였지만 웬일로 아침에 그가 산을 올랐다. 허리춤에 술병이 없는 걸로 보니 술을 마시자고 올라온 것도 아니었다.
“사부는 지금 마실 나가고 없는데….”
“아니아니, 오늘은 널 보러왔어. 잠깐 나를 따라 가자꾸나.”
아침부터 산에 올라오더니 영문 모를 소리를 한다. 소양으로선 점점 고개가 갸웃거릴 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
“우리 집에 좀 가야할 일이 있어서 그래. 너희 사부도 거기 있으니 가보면 다 알게 돼. 가보면.”
소양이 되묻자 대뜸 재촉부터 하는 그다. 자세히 보니 눈 밑에도 거뭇한 기운이 서리는 게 많이 피곤해 보인다.
사부가 마을로 내려간 게 그 때문인가. 하며 소양은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사부와 강패가 그에게 나쁜 짓을 할 것도 아니고, 같이 가자면 자신이 필요한데가 있어서 그러는 것이리라. 나무에 걸어두었던 옷을 챙겨 입었다.
그렇게 강패를 따라 내려간 에는 상청 마을이 있다. 종남파가 있는 곳의 반대편에 자리한 터라 작고, 향화(香火)를 올리러 가는 방문객도 없는 마을이다. 전체 호수는 서른이 채 될까 말까한 작은 마을. 그곳에서도 강패의 대장간은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망치소리가 시끄러운 까닭이다. 아직 겨울이 채 지나지 않은 쌀쌀한 날씨인데도 문을 열고 들어가자 후끈한 열기가 덮친다. 그 속에서 청오가 연신 풀무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강패가 작게 기침하며 인기척을 내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는 말했다.
“강패놈이냐. 망할 제자도 같이 왔으면 이리 와봐.”
소양이 다가가는데 화덕에 꽂혀있는 것이 보였다. 이척 정도 되 보이는 길이에 폭은 한치 반 정도 되는 것 같다. 아직 다듬어 지진 않았지만 검(劍)이 분명할 것이다. 그가 그렇게 검에 빠져있자 강패가 와서 한마디 했다.
“어때, 멋지지? 이게 앞으로 네가 사용할 검이다.”
“내꺼? 하지만 난 검법은 배우지 않았는걸?”
소양의 대답에 오히려 강패가 어안이 벙벙해졌다. 마치 소양이 검법을 배워야 했던 게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이다.
“이봐, 룡! 도대체….”
“강패!”
청오가 그의 말을 끊더니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목소리에 담긴 차가운 기운이 화덕의 불조차 꺼뜨릴 것 같았다. 크게 당황했던 강패는 조금 침중한 얼굴이 되었다. 다만 소양만이 영문을 모른다는 의미로 두 사람을 쳐다볼 뿐이었다.
“미안하군, 청오. 하지만 그것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아아, 괜찮아 괜찮아. 이제부터 차차 가르치면 되니까. 그것보다 제자, 이거 좀 두들겨봐.”
냉랭함이 사라진 청오는 대수롭다는 듯이 대답하고는 모루에 검을 올렸다. 빨갛게 달구어진 쇠가 소양을 유혹하듯이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소양은 망치질은커녕 망치 잡는 법조차 몰랐다.
“사부! 가르쳐 주지도 않은 걸 어떻게 하란 말이야!”
“걱정마. 강패가 옆에서 도와줄 거야. 이건 네 거니까 네가 마무리를 해야 돼.”
그의 말에 소양이 어색하게 망치를 들자 강패가 자세를 잡아주며 이야기했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어. 망치를 올리면서 들이키고. 내려칠 때 내쉬는 거야. 나랑 박자가 어긋나면 안 돼. 내가 한번, 네가 한번. 명심해. 절대 틀려선 안 돼!”
강패가 먼저 망치를 들고, 그가 내려치면 소양이 망치를 들었다.
깡- 깡-
규칙적인 소리가 대장간을 울리기 시작했다. 몇 번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소양의 등엔 땀이 축축하게 젖어왔다. 그렇게 얼마나 망치를 휘둘렀을까? 풀무질을 하던 청오가 다시 쇠를 들어 화덕에 집어넣었다. 다시 빼고, 치고, 다시 집어넣고…
점점 검이 모양을 잡혀가자 그들의 움직임도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화덕에는 이제 푸른 청화(靑火)가 피어오르고 횟수를 거듭할수록 모루위에 내려치는 망치도 이제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지고 있을 때쯤 드디어 검이 완성되었다. 아직 손잡이도 없이 검신(劍身)뿐인 검이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예기(銳氣)가 흘렀다. 강패가 작은 망치로 여기저기를 두드려 보면서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좋군. 명검(名劍)은 아니지만 좋은 게 나왔어. 수고했다 소양아. 이제 마무리를 해야지.”
“아직 안 끝났어? 더 이상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는데….”
“걱정마라. 이제 힘쓸 일은 없으니.”
그리고는 소양의 손을 잡더니 작은 칼로 손바닥을 죽 긋는 게 아닌가. 따끔한 고통에 소양이 기겁해서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야!”
소양의 외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강패는 검에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이제 네가 주인이라고 길을 들이는 거야. 이래야 진정으로 네 검이 될 수 있으니 조금만 참아.”
소양의 피가 검신을 타고 흐르자 피가 닿았던 부분부터 시작해서 검이 옅은 붉은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흘러내리는 피의 양은 꽤 되었지만 모두 검에 스며들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 방울도 없었다.
“음, 이상하군.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도 이런 일이 생긴 적은 처음이었나 보다. 연신 이상하다를 내뱉으며 검을 살핀다. 그 모습을 보던 청오가 말했다.
“그냥 놔둬. 적류공 때문에 그래.”
“그 기공? 그것만으로 이런 일이 생길수가 있단 말인가?”
“내공이 쌓여갈수록 피에 영성(靈性)이 생긴다더군. 나도 말로만 듣던 건데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어.”
말로만 들었다? 적류공을 만든 것은 그가 아니던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낮의 일도 그렇고 소양으로서는 오늘 하루 종일 의문만이 남는다. 하지만 그의 사부에게 물어보지는 못했다. 몸이 너무 피곤한 까닭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도중 잠이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상처 났던 그의 손바닥도 이미 아문지 오래다. 빨갛게 부풀어 오른 자국만이 상처였던 부분을 알려주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신기하군. 벌써 상처가 아물었어. 이런 건 자네도 못할 거야 아마.”
“그렇겠지. 이 아이는 정말 특별하거든.”
두 사람은 잠든 소양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불이 꺼진 대장간 안에는 소양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만이 조그마하게 울려 퍼졌다.
수정하다가 빡돌아서 원문으로 붙임 뭘 어떻게 수정해도 제대로 안뜬다.
역시 무협은 큰거보면서 봐야댐 짱잼남
술냄새 가득한 목소리로 흐르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촛점 잃은 눈으로 별도 보이지 않는 밤하늘을 바라본다.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와 나를 찌르는 것은 내 구린 입냄새고
흘러가는 노래에 들려와 나를 울리는 것은 내 녹슨 목소리냐.
그저 밖에 내지 못하고 썩고 썩어 형체조차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은
목구멍 너머 올라와 다시 술안주가 되어 누런 이빨 사이로 씹힌다.
쓰려오는 손가락 끝 사이로 똥보다 더 구린 냄새 가득한 연기가 솟고
흐린 안경알 너머 덕지덕지 붙은 먼지로 더러운 세상은 그저 어지럽다.
하루만 쉬자, 하루만 더 기다려보자는 기다림은 깃발 잃은 깃대처럼,
결국 떨어지는 국화 한송이만이 내 기다림 끝에 피어 마른 대지에 눈물 적신다.
